2010년 12월 17일은 현장의 역사 교사들에게는 매우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 날 '2009 개정 교육과정'이란 이름으로 미래형 교육과정이 확정 발표되었는데, 이 발표에서 기존 예상을 뒤엎고 역사과의 선택교과로서 '한국문화사' 대신 '동아시아사'의 전격적인 채택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09개정 교육과정'이 과연 우리 역사 교육에서 어떻게 자리매김이 되고 어떤 족적을 남길 것인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어찌됐든 한때 사라질 위험에 처했던 '동아시아사'는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현장의 역사 교사들에게 '동아시아사'는 지금껏 교과목으로서 전범(典範)을 볼 수 없었던 매우 생소한 과목이다. 또한 기존 '동양사'라는 지식의 위계 및 질서에 익숙한 대부분의 역사 교사들은, 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역사 담론으로 부상하여 아직 학계에서조차 축적된 지식의 성과가 부족한 이 새로운 역사영역인 '동아시아사'를 과연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 섞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2010년 1월 첫째 주, 공교롭게도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설과 함께 시작된 '동아시아사 교원 연수'는 바로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실천 가능한 답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중요한 자리였다. 특히 2010년 동계 연수는 그동안 재단 주도로 이루어졌던 수년간의 기본 연수보다 한층 더 깊어진 전문적인 내용의 심화 연수 과정으로, 앞으로 '동아시아사'라는 새로운 역사영역을 현장의 맨 선두에서 지휘 담당할 역사 교사들의 진지한 참여와, 연수를 마련한 재단 측의 열과 성을 느낄 수 있었던 뜻 깊은 장이었다.
'역사학' 없는 '역사 교육'이 가능한가
이번 연수는 2010년 1월을 기점으로 서울(1기, 2기)과 부산에서 각 5일씩 총 보름동안 진행되었다. 10강의 주제 및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강과 마지막 10강에서는 '동아시아사' 교과목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배경-한·일, 한·중 역사갈등과 역사화해 노력 등-과 경과를 소개하고, '동아시아사'-사실상 기대를 받기보다는 걱정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기는 하지만-를 통해 그동안 우리 역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일국사' 중심의 한국사 인식 및 중국사 중심의 동양사 인식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강, 4강, 6강, 7강에서는 '동아시아사' 교과서 속 6단원 26개 주제 가운데 다소 생소하여 평소 현장의 역사 교사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한 관점 및 내용을 쉽게 소개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자신이 속한 국가를 단위로 역사를 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의 역사는 '한국사'로, 중국인의 역사는 '중국사'로, 일본인의 역사는 '일본사'로 부르는 방식에 더없이 익숙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이 가능하거나 필요하다고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함동주)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의 역사적 갈등과 정치 현실,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부상은 그동안의 역사 인식이 과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인지 냉정히 돌아보고 검토하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작업들의 결과, 역사 인식의 공유 가능성을 타진하는 '동아시아사'라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교과목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동아시아사'가 우리 역사 교육에 등장하면서부터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앞서 얘기했듯, 역사적 공간 및 범위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학문적 기반이 미약한 '동아시아사'를 과연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즉 역사학 없는 역사 교육이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동아시아사', 역사적 창의력 키우는 훌륭한 대안
그런데 이번 동계 동아시아사 교원 연수를 받으면서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답은 예상 외로 '간단'했다. 설령 합의된 '동아시아사'의 고정된 실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는 곤란해도, '동아시아적' 사고와 관점을 보여주는 '동아시아적' 수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 교사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긴 하겠지만, '동아시아사'는 학생들의 역사적 사고력을 형성시키는 훌륭한 역사 교육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적' 관점은 학생들에게 교과서 속 하나의 강요된 시각이 아닌, 다양한 여러 대안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게 하는 눈을 갖도록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우리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모두 살펴보는 '동아시아사'를 통해 '자신의 눈으로 사회와 역사를 보고, 그런 후에 자신의 판단도 의심해 보는 자세'를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동계 동아시아사 교원연수는 이처럼 우리 역사 교육에서 왜 '동아시아사'가 필요한지를 현장의 역사 교사들에게 절실히 느끼도록 해 준 의미 깊은 자리였다. 앞으로도 직접 나름대로의 '동아시아사'를 만들어내고 교육의 선두에서 활약할 역사 교사들과 '동아시아사'를 배울 우리 학생들을 위한 이와 같은 장을 지금처럼 양적·질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거듭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동북아역사재단의 또 하나의 주요한 임무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