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연구소 소식
미국과 유럽의 '한국학'
  • 마이클 D. 신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실감이 나진 않지만, 필자가 한국학을 연구한지도 이제 어언 25년이 되었다. 80년대만 해도 한국 관련 강좌가 개설된 대학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는데, 필자의 모교도 그 중 하나였으니 운이 좋았던 듯싶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고, 강의도 맡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2010년이 되었다. 필자는 2008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데, 유럽에서 강의하면서 한국학의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는 미국 내 한국학이 유럽에 비해 더 발전했다고 생했는데, 여기 오고 나서야 미국과 유럽 간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우선, 유럽보다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 훨씬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코넬 대학에서 강의하던 때를 돌아보면, 한국 음식을 자주 접했다든지 한국계 미국인 친구가 있다든지 등, 대학 진학 전부터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코넬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필자의 강의를 듣는 비 한국계 학생들이 갈수록 눈에 띄게 늘었다. 물론 한국계 학생이 비 한국계 학생에 비해 여전히 많았지만, 두 그룹 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유럽에 온 이후로, 필자는 유럽인들이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아는 바가 없는지를 실감하고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는 학생들과 교수들도 있었다. 중국 일본과는 달리, 유럽인들의 마음속에는 한국과 연관된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의 유럽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했던 70년대의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미국이 한국학 지원금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해온 것도 이해할만하다.

한편, 필자는 유럽 내 한국학 성장의 잠재력도 발견할 수 있었다. 70년대의 미국과 크게 다른 점은, 한국이 이미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제품, 특히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정작 이 제품들이 한국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언젠가 한 자동차 정비공이 필자에게 현대 자동차의 장점을 설명하며, 자기도 예전에 현대차를 몰았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현대가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몰랐던 그는, 자동차는 역시 일본이 잘 만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단 학생들이 한국을 경험하게 되면, 한국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된다.

개별 국가 보다 '동아시아'적 접근을 선호하는 유럽

케임브리지 대학케임브리지 대학

더 나아가, 미국 학생들과 견주어볼 때 유럽 학생들은 한 국가에 집중하기보다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접근방식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국민국가의 범위를 넘어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어떻게 한국학을 중국학, 일본학과 접목시키는가가 해외 한국학의 미래를 결정지을 지도 모른다. 여전히 구시대적 오리엔탈리즘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지역도 있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진전의 조짐을 찾아볼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우, 그간 별개로 운영되어왔던 중국학과 일본학이 몇년 전 동아시아학부로 통합되었다. 겉모습만 변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간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신입생들은 동아시아사에 대한 입문 강좌를 같이 듣도록 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이외에도 여러 대학들이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부 교육은 미국 대학들과는 매우 다르게 구성되어 있으며, 문제점과 잠재력을 동시에 갖춘 구시대적 교육 시스템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유럽 학생들은 전공 강의만 듣고 부전공을 선택할 수 없으며, 대다수의 미국 대학들과는 달리 유럽에는 "core courses" (핵심강좌) 시스템이 없다. 미국에서 부전공으로 동아시아학의 인기가 높은 것을 감안할 때, 이런 여건은 한국학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반면, 조교를 거의 두지 않기 때문에 교수들이 학부 강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학생들과 전임 교수진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위해 소규모 인원으로 강의가 진행됨에 따라, 미국 대학에 비해 강의와 연구의 연계가 잘 되어있다.

학계 바깥의 넓은 세계와의 교류에 관심을

영국에 온 이후로 한국학이 달성해야 할 목표에 대한 필자의 생각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지원금이나 제도적 지원은 일차적으로 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다른 목표들도 있지만, 사람들은 학계에 몸담는 학자 수를 늘리면 다른 목표도 달성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연구를 강화한다고 해서 학부 교육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십 년간 학계의 주요 변화 중 하나는, 연구가 점점 특화되고 관료화되면서 학계와 외부세계의 괴리가 점점 커졌다는 것이다. 필자가 학부 다닐 때만 해도, <뉴욕 리뷰오브북스(Review of Books)>에 실린 학술 서적 리뷰를 읽곤 했지만, 이제는 이런 학술 서적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중국학, 일본학의 경우 학계 바깥에도 많은 기고가와 논객들이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제고하고 있는데, 한국학의 경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이 문제의 중요성은 뉴욕 타임스퀘어와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올해 3월 1일부터 4개월 간 매 시 2회씩 독도 관련 영상물이 타임스퀘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다. 또한 2008년 7월 독도 문제 관련 광고가 뉴욕타임즈에 실린 바 있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이 광고에 고마워하지만, 이 캠페인에 쏟아 부은 많은 노력과 재능 등에 비해 그 영향은 제한적이다. 필자는 이 캠페인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어째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설득되어 한국 편에 서게 될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한국인들의 노력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국인들의 관심사항과 우려사항을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인들이 왜 이런 문제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일반 대중에게 설명할 수 있는 논객들을 양성하는 데 한국학이 기여할 필요가 있다.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학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반증하며, 학계 바깥의 넓은 세계와 교류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