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
지난 10월 26일(월), 27일(화) 양일간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미래'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본 학술회의는 안중근·하얼빈 학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중·일 3국의 석학들이 참여하여 100년 전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을 오늘의 관점에서 천착하고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 공동의 미래를 모색해 보았다는 점에서 관련 학계 및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있었으나 본 학술회의의 특징은 미래지향적으로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으로부터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형성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얻고자 했다는 점이다.
안중근은 미완고로 남긴 『동양평화론』에서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저격은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진정한 동양평화를 위해서였다고 누누이 말했다. 또 어디까지나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으로 작전 중에 적장을 쏜 것이지 개인적인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아시아 3국이 서양의 동양 침략을 막기 위해 공동 군단을 설치하고 공용 화폐를 발행할 은행을 설립하여 경제공동체를 이루자고 제안하였다. 옥중에서 남긴 이 글은 100년 뒤 한·중·일 3국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안중근의 의거가 단지 한국인의 항일운동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한 대선언이었음에 주목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여 한·중·일 3국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된 학술회의였기에 한·중·일 3국의 학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을 수 있었고 이틀간 허심탄회하게 열띤 발표와 토론에 임할 수 있었다.
안중근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
첫째 날 일정은 기조발표에 나선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의 "안중근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 강연으로 시작하였다. 안중근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윤병석 교수는 그간의 안중근 연구를 전체적으로 검토하면서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성찰하고 앞으로 안중근 의사 헌향과 연구의 방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길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필자는 "한국 근대 동양평화론의 기원과 계보-그리고 안중근"에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당시 한국 지식계층의 일반적인 동양주의, 특히 문명개화론자의 인종주의적 동양 담론의 맥락을 잇고 있으면서도 한·중·일 3국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회의체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평가하였다.
"일본의 확장주의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발표한 쑤용(徐勇) 중국 북경대 교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평화원칙에 대한 자신의 심사숙고를 풀어낸 것이라고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였다. 일본 류코쿠대 도츠카 에즈로(戶塚悅郞) 교수는 안중근이 뤼순 소재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살인죄로 기소당해 일본제국 형사법으로 재판을 받은 것을 당시의 국제법과 실행의 실례, 1905년 보호조약의 법적인 평가 등에 비추어 불법이었음을 규명하였다.
"미완의 동양평화론-그 사상수맥과 가능성에 대해서"를 발표한 야마무로 신이찌(山室信一) 일본 교토대 교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전제로 천부인권론과 문명비판론에 주목하였고, 동양평화를 넘어 세계평화를 지향하여 국경을 넘어 시민이라는 존재를 의식한 안중근 사상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였다. 또한 '인약(仁弱)'이라는 개념을 통해 '무단(武斷)'에 대응하여 평화를 추구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가치를 평가하였다. 첫째 날 마지막 발표로서 안중근·하얼빈 학회의 공동회장인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하얼빈시가 불리한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빙설제를 성공시킨 사례에 대해 환경창조이론을 토대로 분석하였다.
동아시아사의 맥락에서 만나는 안중근
둘째 날 첫 발표로 마키노 에이지(牧野榮二) 일본 호세이대 교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이마뉴엘 칸트의 '영원평화론'과 비교 고찰하면서 유럽연합의 이념,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도 관련지어 논의하였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안중근 가문의 후예들이 안중근 의거 이후 독립운동, 통일운동, 평화운동에 매진한 빛나는 공적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이 겪어야 했던 탄압과 시련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왕원주(王元周) 중국 북경대 교수는 중국인이 쓴 안중근에 대한 저작물에 나타난 안중근의 이미지들을 분류하고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상을 고찰하였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고종황제의 관련성에 주목한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가 처음부터 황제측이 기획하여 연해주 의병세력이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 황제가 국제적인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안중근을 여순 지방법원에서 러시아 법정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는 사실 등을 관련 자료를 통해 규명하였다. "안중근 의거의 중국에 대한 영향과 그 평가"를 발표한 최봉룡 중국 대련대 교수는 중국에서 안중근의 활동과 사상적 변화상을 추적하고, 하얼빈 의거에 대한 중국인의 평가, 중국내 안중근 기념시설의 현황 등에 대해 정리하였다.
종합토론에서는 김용덕 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과 조병한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안중근을 한국사의 위인으로만 규정짓지 말고 좀 더 넓은 동아시아사 전체의 시각에서 연구해 줄 것을 당부하였고,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안중근 연구사를 총정리하면서 앞으로의 안중근 연구의 방향 을 제시하였으며,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유교적 전통이 미약했던 일본과 달리 유독 한국에서 '동양평화론'이 나온 배경에는 국가나 민족보다 보편적 문명으로서 유교를 중시한 조선의 유교사상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본 학술회의 행사의 일환으로 10월 26일 저녁에는 남산의 국악당에서 서울대 작곡과 최우정 교수와 성악과 소프라노 김인혜 교수의 '안중근을 그리는 평화콘서트'가 개최되어 발표자와 토론자 및 일반 시민이 참석하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뜻깊게 추모하는 자리를 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