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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보고 - 고구려 고분 벽화 모사 복원 사업] 벽화가 살아났다, 고구려가 돌아왔다!
  • 홍면기 | 연구위원(전략기획실)

고구려 고분벽화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문 귀중한 문화유산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유네스코도 이러한 가치를 인정해서 2004년 30기의 고구려 고분벽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귀중한 문화유산이 대부분 북한과 중국에 치우쳐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사정이고, 보존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해부터 이러한 애로를 타개하기 위해 벽화자료를 디지털화하여 과학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첫 대상으로 덕흥리 고분 벽화를 모사·복원하였다.
덕흥리 고분은 광개토대왕 생존 당시 그를 도와 활약하였던 유주자사(幽州刺史) 진(鎭)의 무덤으로 1976년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리에서 발견되었다. 이 고분은 발견 당시부터 고구려의 생활상과 세계관을 그려낸 벽화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무덤의 주인공인 유주자사 진에게 요동지역 13군의 태수가 알현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벽화는 전성기 고구려의 대외관계 등에 관한 문헌사료를 보완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덕흥리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경이로운 세계관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큰 문화유산이다. 특히 벽화의 천문도에는 중국의 천문도에는 없는 다수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고구려 천문학의 수준과 독자적인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기술로 세월의 풍화를 넘다.

그동안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총론적 수준의 연구는 상당히 축적되어 온 편이지만 각기의 벽화를 개별적으로 정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전반적인 구조 속에서 설명하는 자료는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벽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적 구조를 밝히고, 국민들이 벽화를 '살아있는 이야기'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일종의 문화적 소명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작업이 시작되고 난 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벽화는 세월의 무게를 버거워 하고 있었지만 벽화의 실물을 직접 캔버스에 옮길 수도, 수시로 카메라에 그 상을 담아 분석할 수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작업에 가장 중요한 1차 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기왕에 확보된 벽화 사진자료를 해석하고 여기에 컴퓨터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위와 같은 문제를 풀어가면서, 부족한 점과 새로운 연구결과는 디지털화된 자료에 지속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90년대 이후 축적된 출판계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현대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해방이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이루어진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를 뛰어 넘는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덕흥리 고분 벽화의 모사는 기본적으로 사진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윤곽선을 살려낸 다음 여기에 색채값을 복원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역시 원 자료에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는 현실에서 전례 없는 장르를 개척하다보니 성과만큼 학문적·기술적으로 해소해야 할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예컨대 우리는 작업의 과정에서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 마멸된 '흔적'을 사람의 발로 볼 것인지, 이끼의 박락으로 볼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경우,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전사(轉寫)할 것인가의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이 고분 벽화 대부분의 인물에 귀가 없고, 기마인물에 발이 그려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를 우리는 논증할 수 없었다. 컬러 면에서 벽화에는 청색이 보이지 않는 데 이것이 안료상의 문제인지, 세월에 따라 없어진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밖에 작업과정에서 필선의 느낌들, 문양의 패턴 등에 관한 수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지만 이러한 모든 문제를 전문연구가들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절반의 완성, 새로운 과제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작업을 통해 덕흥리 고분벽화의 부분과 전체의 이미지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함으로써 벽화의 연구·활용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자 한다.
디지털화된 모사도의 활용 방안은 매우 다양하다. 먼저 전시에 활용하기가 가장 좋다. 실제 크기인 3미터 크기로 출력될 수 있음은 물론 매체에 따라 600% 정도까지는 해상도의 손상 없이 활용이 가능하다. 이는 조각그림 맞추기 수준의 벽화자료를 사실적인 이미지로 재현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에 개발된 자료를 토대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웹 서비스, 3D 비주얼 박물관 구축 등도 가능할 것이다. 일반인과 연구자들은 웹 상에서 개발된 이미지들을 분석, 검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벽화를 3차원 공간을 구현하는 것도 현재 기술력으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 고구려의 옷을 입고 고구려인이 되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모사·복원과정에서 국제학계와의 공동연구와 교류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자산과 기술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이해가 높아지면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소재를 관광상품으로 개발, 보급하는 교육문화산업적 측면의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재단은 현재 약 107기 정도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의 과학적 보존과 활용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전문가에게 새로운 개념의 연구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이 1600여 년의 역사적 공백을 건너뛰어 고구려인의 숨결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당시의 역사를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살려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