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재단은 대회의실에서 ‘동아시아 근현대사 서술과 한중 역사인식 대화’를 주제로 제2회 한중 교과서 집필자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1회 포럼의 성과를 이어, 한중 양국 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을 비교·검토하고 상호 이해를 넓히기 위해 마련되었다.
포럼에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육 및 역사교과서 연구를 선도해 온 중진 연구자들과 현직 교과서 집필진이 참여하였다. 참석자들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3·1운동과 5·4운동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교과서 서술의 차이와 공통 과제를 논의하였다. 중국 측에서는 수도사범대학과 베이징사범대학 소속 연구자들이 참석해 최근 중국 역사교과서의 서술 방향과 연구 동향을 소개하였다.
첫째 날, 동아시아 근현대사 관련 역사 현장 답사
중국 측 참가자들은 4월 22일 서울에 도착해, 포럼에 앞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3·1운동 관련 유적을 답사하는 일정으로 첫날을 시작했다.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중명전을 찾았다. 원래 대한제국 황실도서관으로 사용된 중명전은 이후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외교 공간이 되었으며, 청일전쟁 이후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중명전은 당시 국제정세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 현장으로 소개되었다.
이어 참가자들은 구 러시아공사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명성황후 시해 이후 고종이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의 현장으로, 대한제국 시기 국제정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다. 참가자들은 청일전쟁 이후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현장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음 일정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박물관 8층 전망대에서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경복궁 일대를 바라보며, 기존의 ‘경복궁 점령’이라는 표현 대신 ‘경복궁 전투’라는 사건명에 주목할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는 당시 일본군에 맞서 저항한 조선 군사들의 대응과 활약이 기존 역사 서술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었다.
이어 탑골공원으로 이동한 참가자들은 3·1운동이 시작된 역사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다. 중국 측 교과서 집필진은 “사진과 교과서에서만 보던 장소를 직접 방문하게 되어 뜻깊다”는 소감을 전하며, 독립선언기념비와 공원 일대를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대학 강의와 교과서 집필에서 3·1운동 관련 내용을 보다 생생하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 참가자도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독립문은 청일전쟁 이후 청 중심의 조공·책봉 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건립된 상징적 공간이다. 참가자들은 독립문이 국권 상실 이전 대한제국기 자주독립 국가를 지향하려는 흐름 속에서 세워졌다는 설명에 관심을 보였다. 또한 독립문이 과거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 인근에 세워졌다는 점을 통해,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동아시아 질서 변화의 단면을 확인하였다.
독립문 인근의 3·1독립선언기념탑도 함께 둘러보았다. 참가자들은 대한제국기 독립 담론이 이후 3·1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흐름에 주목하며, 한국 근현대사의 연속성과 역사교육의 의미를 되새겼다. 첫날 일정은 유관순 동상 앞에서 마무리되었다. 참가자들은 이날 답사가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보다 깊이 있게 조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둘째 날, 한중 교과서 집필자 포럼
제2회 한중 교과서 집필자 포럼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3·1운동과 5·4운동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양국 역사교과서의 서술 방식과 역사 인식을 비교·검토하는 자리로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 포럼은 단순한 발표 중심의 학술회의를 넘어, 발표자와 토론자가 상호 질문과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이해와 몰입을 높였다. 회의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서술과 한중 역사인식 대화’를 주제로 세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제1부 청일전쟁, ‘공동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제1부에서는 청일전쟁이 양국 교과서에서 어떻게 서술되고 있는지를 비교하였다. 한국 측 발표자는 1894년 경복궁전투와 제2차 동학농민전쟁이 청일전쟁의 일부였는데도 청일전쟁 서사에서 한국의 경험과 시각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청일전쟁의 주요 전장이 한반도였고, 조선의 정규군과 농민군, 민중 등 한국 사회 전반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국제정치 중심의 서사에서 한국이 주변화되어 왔다고 지적하였다.
중국 측 발표자는 청일전쟁이 중국·조선·일본 3국의 사회 변화와 국제질서가 복합적으로 얽혀 발생한 ‘공동의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국정 역사교과서가 일본의 침략성과 제국주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전쟁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 국제질서 전체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토론에서는 청일전쟁을 어느 한 국가의 역사로만 서술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각국의 경험과 관점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참석자들은 ‘공동의 역사’를 ‘공유된 역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서술에서 타자의 관심과 시각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제2부 러일전쟁, 일국사 서술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으로
제2부에서는 러일전쟁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 역사교과서의 서술 특징과 최근 연구 동향이 소개되었다. 한국 측 발표자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러일전쟁을 주로 일본의 한국 국권 침탈이라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러일전쟁이 세계사와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러일전쟁이 한반도를 주요 무대로 전개되었음에도, 제국주의 열강 간 경쟁 구조나 영국·미국의 역할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중국 측 발표자는 최근 중국 학계에서 러일전쟁 연구가 세계사적 시각, 사회사, 지역사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확대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기존의 일본·러시아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한국과 중국 동북지역의 경험을 함께 조명하려는 연구가 늘고 있다는 점도 언급되었다. 다만 중국 교과서와 대학 교재는 여전히 러일전쟁을 일본과 러시아가 중국 동북지역의 이권을 둘러싸고 벌인 ‘부정의한 전쟁’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발표와 토론을 통해 참석자들은 러일전쟁이 단순한 양국 간 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제국주의 구조 속에서 전개된 복합적 사건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향후 역사교과서가 일국사 중심 서술을 넘어 다양한 국가와 지역의 경험을 함께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제3부 3·1운동과 5·4운동, 동아시아 민족운동의 비교
제3부에서는 한국과 중국 역사교과서 속 3·1운동과 5·4운동 서술의 특징과 변화 과정이 논의되었다. 중국 측 발표자는 지난 100년간 중국 역사교과서에 서술된 5·4운동을 시대별로 분석하였다. 초기 교과서에서는 주로 애국주의적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나, 이후 정치 체제와 이념 변화에 따라 혁명운동이자 신민주주의혁명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강화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애국·진보·민주·과학이라는 ‘5·4정신’의 현대적 가치와 사회·문화적 의미도 함께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한국 측 발표자는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3·1운동을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사건으로 상세히 다루는 반면, 5·4운동을 비롯한 아시아 민족운동과의 상호 관련성은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3·1운동이 다른 아시아 민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방향의 서술은 존재하지만, 동아시아 민족운동을 상호 비교하는 관점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제시되었다.
토론에서는 3·1운동과 5·4운동을 각국사의 주요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시대 아시아 민족운동이라는 넓은 흐름 속에서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사 교육을 강화하고, 교과서 서술에서도 양국 민족운동의 공통점과 차이, 상호 연관성을 균형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제안이 이어졌다.
셋째 날, 기억의 공간에서 다시 생각하는 교과서와 역사 인식
마지막 일정은 학술회의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역사문화 답사로 구성되었다. 중국 측 참가자들은 청일전쟁 초기 격전지 가운데 하나인 성환전투 현장을 방문하여, 청일전쟁이 단순히 청과 일본의 전쟁이 아니라 한반도를 주요 전장으로 전개된 전쟁이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또 최근 한국 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 청일전쟁 속 조선의 경험과 피해, 그리고 조선군과 민중의 대응을 적극적으로 조명하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에 주목하며 관련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어 독립기념관에서는 일제 침략과 한국의 독립 과정을 담은 전시를 둘러보며, 교과서 속 독립운동 서술과 역사 기억의 관계를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방문지인 유관순열사기념관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아우내 만세운동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다. 참가자들은 3·1운동이 민중의 참여와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중국 측 연구자들은 한국 역사교과서에서 3·1운동이 매우 비중 있게 서술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향후 중국 대학 교재와 역사교과서에서도 관련 서술을 보다 충실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호 이해와 평화 공존의 역사교육으로
이번 제2회 한중 교과서 집필자 포럼은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한중 양국의 역사교과서 서술과 역사 인식을 비교·검토한 뜻깊은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각국의 역사교과서가 여전히 자국사 중심의 관점에 머무르는 한계를 공유하고,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각국의 경험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역사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무엇보다 이번 포럼은 한국의 역사 현장 답사와 학술 토론을 함께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참가자들은 역사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과서가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상호 이해와 평화 공존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 앞으로도 재단은 동아시아 역사교육과 교과서 연구를 둘러싼 국제 학술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