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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연해주에 대한 통합연구, 동북아 공존의 출발점
기고 만주-연해주에 대한 통합연구, 동북아 공존의 출발점 배경한 신라대 교수 -->오늘날 ‘만주(滿洲)’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중국 동북3성을 떠올릴 것이다. 또 ‘연해주(沿海洲)’는 해안지역을 뜻하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Primorskij Kraj)’라는 러시아어를 번역한 것으로 ‘동해에 접한 러시아 영토’를 가리킨다. 이처럼 현재 만주와 연해주는 각기 중국과 러시아 영토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흔히 양자를 아무 관계도 없는 전혀 별개의 지역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양자 사이에 산맥이나 강줄기가 가로놓여 있지만, 지도를 펴놓고 이 지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지역이 밀접히 연관된 인접 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동부만주와 연해주는 기후나 식생 등 자연환경이 비슷할 뿐 아니라, 만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쑹화강(松花江)은 만주 외곽을 감싸고도는 아무르강(黑龍江)과 합류한 다음 연해주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흘러든다. 한반도가 오랜 세월 하나의 역사공동체를 형성했던 것처럼 만주-연해주도 불과 1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하나의 통합된 공간으로 존재했었다. 만주-연해주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의 동부만주와 연해주는 춥고 습한 산림지대로서 오랫동안 사냥과 채집을 위주로 하는 수렵민의 터전이었다. 이에 해 중부만주는 비교적 따뜻하고 비가 많이 와서 우리 조상에 해당하는 농경민들이 거주했고, 서부만주는 건조하여 유목과 사냥을 병행하는 유목민들이 거주했다. 이들 여러 족속과 민족은 때로는 반목하거나 대립하고, 때로는 소통하거나 융합하면서 만주-연해주의 역사를 일구어왔다. 상호 소통과 융합의 공간, 분쟁과 갈등의 장으로 변모가령 고대에는 한국 고대국가인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이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특히 고구려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예맥족을 하나로 통합했고, 발해는 동부만주를 거점으로 중부만주와 연해주까지 석권했다. 발해 멸망 이후 한동안 이 지역과 한국사의 관계는 단절되었지만, 서부만주의 거란족이나 동부만주의 여진족(만주족)은 요(遼), 금(金), 청(
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중국의 청사 편찬과 청사 연구
재단 새 책 중국의 청사 편찬과 청사 연구 헌법9조의 사상수맥 -->2003년 초, 약 10년 정도 계획으로 시작된 중국의 이른바 ‘신청사(新淸史) 편찬공정’(이하 청사공정이라 약칭)은 우리나라에서는 학계 일부의 관심 외에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비슷한 무렵 시작한 이른바 ‘동북공정’이 거의 모든 한국인이 인지할 만큼 지대한 관심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그 작업 규모나 의미가 사실상 훨씬 더 중대한 데도 의외일 정도로 우리의 관심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청사공정은 청대사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건의에 기초하여, 중앙정부가 막대한 재정지원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 10년동안 약 1,500명의 연구자가 동원될 만큼 방대한 규모의 작업이 개시되어 이미 그 마무리 작업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청사공정이 지닌 정치적·학술적·현실적 의미는 응당 크게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다.청대의 유산은 바로 오늘날 중국에 대한 규정청사공정은 기본적으로 20세기 전반에 출간되었지만 정사(正史) 24사에 포함되지 못했던 《청사고(淸史稿)》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새롭게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 분량은 대체로 약 3,000만 자(字), 100권 정도로 예정되어 있다. 《사기》, 《한서》에서 《명사》에 이르는 중국사 거의 전 시기를 망라한 24사 전체 분량이 약 3,500만 자임을 고려한다면, 신청사의 규모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공정과 더불어 청대의 수많은 문집이나 당안(공문서) 자료집, 사진집이 체계적인 기획 아래 수집·정리되어 출간되고, 또한 다수의 해외 연구서와 논문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상황은 이 공정에 기울이는 중국 측의 대단한 열성과 노력을 엿보게 해준다. 앞으로 2, 3년이 지나면 대체로 약 10권의 개설 부분과 90권 정도의 자료 부분으로 구성된 신청사가 우리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중국에서는 청대(1644∼1912년)의 역사를 다시 써서 정사의 대열에 합류시키는 데 큰 공을 들이는 것일까? 이렇게 청대 역사를 중시하는 현실적인 이유
김형종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