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메모리 시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책임
  • 작성일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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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 메모리 시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책임2024년 11월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8명이다. ‘위안부’의 역사 쓰기는 포스트 메모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위안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역사를 구성하는 후세대의 윤리와 책임이 더욱 중요해졌다. 피해자들의 말, 삶, 활동과 만나면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을까.1990년대 이후 ‘위안부’ 생존자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기억 정치의 초점이자 국제 인권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의 기준이 되었다. 피해자는 초국적 기억 경관의 세계적 존재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김학순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은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런 일이 없다니 말이 됩니까.”1944년 인도네시아의 위안소에 끌려갔던 네덜란드 출신의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은, 1992년 초 텔레비전에서 김학순 등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과거 트라우마 탓에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없었던 그녀는, “함께 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
“나도 ‘함께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시작되었다… 김학순 씨는 일본 정부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요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녀의 용감한 행동을 보고 다른 ‘위안부’들도 앞으로 나왔다.”말레이시아의 로잘린 소우 쩌유안(Rosalind Saw Choo Yuen)도, 대만의 황야타오(黃雅陶)도, 다른 피해자의 기억과 연결되면서, “함께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로잘린 소우 쩌유안(Rosalind Saw Choo Yuen)
“용기를 내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통스러운 체험을 이야기한 것을 알고, 공개 증언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황야타오(黃雅陶)
“부끄러운 것은 우리들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들을 속여서 끌고 간 일본인 것이다. 일본 정부가 제대로 그 책임을 지길 바란다고 마음으로부터 생각했다.”
흩어져 있던 생존자들은 국경을 넘어 만나고 기억을 공유했다. 이 지도는 생존자와 목격자, 위안소 이용자의 기억과 일본 군·정부의 공문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일본군이 가는 곳 대부분에 위안소가 개설되었다고 기록했다.1993년 8월 4일, 일본 정부는 1991년 12월부터 조사해 온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에 새겨 같은 잘못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표명했다.

고노 담화
〔…〕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련 하에 수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크게 손상한 문제이다. 일본 정부는 〔…〕 많은 고통을 받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한다. 〔…〕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직시하고자 한다.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에 새겨 같은 잘못을 결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 〔…〕
2000년 12월 8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닷새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 열렸다. 민간 법정의 형식으로 열린 이 법정에서 전 세계의 일본군‘위안부’ 및 전시 성폭력 생존자는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기억을 함께했다. 일본의 가해 책임이 선고된 마지막 날에도 이들은 함께 기뻐했다.
고노 담화 30주년을 맞는 2023년 8월,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 방침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과정은 묵묵히 지속되고 있다. 역사 연구와 교육, 오랜 기억(추모), 재발 방지 등 생존자와 시민들이 바라고, 일본 정부가 약속했던 일들은 30년을 넘어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중국 윈난 전투의 생존자 박영심은 자신의 기억과 용감하게 직면했다. 2006년 8월,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박영심은 “나는 사선을 빠져나가 생을 지속해 버렸다.” “악몽에 휩싸여 과거의 일을 알리지 않으려고 숨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안고 살아온 나의 일생은 대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포스트 메모리 시대에 일본군 ‘위안부’와 관계된 기억을 실천해 나가려는 우리들 또한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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