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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봉우권태훈옹과 학인과의 100%실제대화록입니다.ㅡ
1984년 소설 `단`의 실제주인공이며 일명 우학도인으로 널리 알려졌던분입니다...
어릴때부터 단전호흡을 배웠으며 천문 지리 의학에 도통하셨음. (1900~1994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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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7
여러분이.. 우리가 배우길 어떻게 배우는고 하니 백제라는 것이..
고구려는 지금 황해도, 평안도 그게 함경도까지 그게 고구려고, 백제는 여기 서울, 충청도, 전라도 고게 백제고,
신라는 경상도라고 이렇게 배워. 그건 꿈에도.. 꿈에도 맞지 않는 소리여.
백제는.. 고구려는 만주 전체를 차지해가지고 있고, 평안도.. 평안도 그쪽을 차지해서 함경도까지 차지해가지고 있었고, 백제는 산동성(山東省), 산서성(山西省), 하남성(河南省) 그 편짝으로 황해 연안으로 그걸 다 차지했습니다.
자리하고 여기까지 차지해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여기 한.. 이게 여기와서 백제족(百濟族)의 한쪽이 여기와서 지금 부여니 뭐니 하고 있는데가 거기가 이 자리여.
그랬는데, 삼국통일 한다고 해가지고선 얼른 여러분이 보십시오. 그 땅이 그렇게 거대하던 땅을 신라가 차지한 땅이 어딥니까?
삼국통일 해서 차지한 땅이 황해도까지도 다 못갔어요. 경기도하고 충청도하고 전라도하고 경상도하고 강원도도 반쪽, 그게 신라 자리입니다.
그게 신라 자리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나머지는 어디로 뺏겼느냐?
그건 이세민이한테 뺏긴거야 ○○. 이세민이가 거기까지 다 나와 통치를 못하니까, 뭣이, 뭣이, 뭣이 하고 여러 가지로 나눠가지고 있었지.
그래 이제 거길 들어가서 보면, 중국 들어가서 제가 한 40년 들락날락 하고 있었는데, 거기 가 보면 묵은 사람들..
이 백두산족의 자손들 이것들은 (나에게) “왜 너희족.. 너희 고장.. 너희 자손(문맥상 자손이 아니라 조상)들이 살던데를 못찾느냐?” 자꾸 이럽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땅이 몇천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살던땅에 지금).. 자손들이 되려 잘사니까 우리땅으로 확보하라면 됩니까? 그 안될말이에요. 되지를 않아요.
그런데 저기서 얼른 알기 쉽게 되게 해놓은건 뭣인고 하니, 진시황이 이 백두산족이 늘 염려가 되니까, 만리장성을 쌓았어요.
이 백두산족, 몽고, 만주, 서백리아(시베리아), 여기 있는 물건들이 또 들어올 염려가 있으니까,
만리장성 1만2천리를 쌓아놓은게 산해관(山海關)서부터 함곡관(函谷關)까지 1만2천리를 만리장성을 쌓아서 (장성)이북(以北)은 본비아토(本非我土)입니다.
이게 본디 우리땅이 아니다. 중화민국, 중화민.. 그 땅만 차지한다 이것이 진시황 같은 욕심장이 녀석도 그렇게 밖에 안했어요.
그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여기 삼국통일했던 것이 가장 자랑으로 알고.. 가장 자랑으로 알고, 여기서 지금 고려가 조금 쫓아가서 압록강하고 두만강 거기를 경계로 했어,
고려가. 서희[徐熙, 942~998].. 북벌하던 장군이 서희, 강감찬[姜邯贊, 948~1031]이니 뭣해가지고 거기 좀 조금 위로 차지했지, 저 건너는 못갔습니다.
28:26
그래 간도성(間島省)까지 우리가 차지했던 거에요. 이 안동현(安東縣)으로 간도성으로 그게 이제 서간도(西間島) 북간도(北間島) 차지했던건데,
서간도 북간도는 우리나라 와서 뺐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싸워서 뺏긴거 아니에요. 거기 맨날 싸우니까.. 네 땅이니 내 땅이니 하니까,
중국하고 여기하고 청국(淸國).. 청국하고 여기하고 둘이 뭣을 했는고 하니, 날짜를 정해가지고 몇천리니까 아무 날짜에 여기 떠나고..
여기서 떠나면서 서로 만나는 데를 경계로 잡어. 기가 맥히지 그거. 비가 이틀이 왔습니다. 그 떠나가지고 오는 동안에 비가 이틀이 왔는데,
조선 여기 정계사(定界使)라고 하신 박참판(朴權)인가 하는 양반이 비가 오는데 어떻게 가? 비가 오는데 어떻게 안가(고).. 이틀을 묵었어. 이틀을 묵었는데,
저 사람들은 비가 오건 말건 그냥 나왔어. 그러니까 말이 쉽지, 이틀이면 200리 아닙니까? 안간 사람하고 간 사람하곤 400리를 뺏긴거여.
그 짧게 하더라도 400리 거리를 죽 뺏긴거란 말이야.6)
그래가지고 간도라는게 가운데 있던거에요 그게. 그 간도에 가 보십시오. 간도에 가보면 얼른 알기 쉽게 봉황성(鳳凰城)이니
구련성(九連城)이니 뭐니 하는 것이 양만춘(楊萬春)이 화살에 눈 당한 사람이 누구여? 당태종 아닌가요? 그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러니 그게 고구려 땅인게 확실하지.
6) 백두산을 청나라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불렀으며, 이 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두 강을 가지고 국경을 삼았다. 하지만 그 지역이 험하고 멀어서 제대로 경계를 알기 어려우니 양국간에 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1712년 청나라가 목극등(穆克登)이라는 관원을 백두산에 표석(表石)을 세우기 위하여 파견된다는 통지를 하자, 우리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으로 정계사(定界使)를 삼아 청나라 관원들과 함께 가서 경계를 결정하도록 하였고,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 분수령을 찾아 ‘사람 인(人)’자처럼 생긴 지형 가운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내려왔다고 한다. 일행이 왕복한 거리는 약 2,000여 리로서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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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
봉우선생님 : 기예. 그러니 아주 저 서적이가.. 서적(徐勣)이가 나중에 성(姓)을 나라 성을 따라서 이적(李勣)23)이라고 지었는데, 서적이가 죽으며 당태종한테 유서여.
상소를 했는데, 당태종이 여기 칠라고 자꾸 하니까,
“폐하가 만리만능(萬理萬能)을 다해서 고구려를 칠라고 해도 안됩니다. 용(勇)이 부족하고 기(氣)가 부족해. 용기(勇氣)가 다 부족하니까 안되는데, 싸워서는 못이깁니다.
개소문이가 죽은 뒤에, 그 사람이 덕을 못닦고 기예와 욕망만 가진거라놔서 덕화(德化)로 못 뭉친데니까, 그 말하자면 조선사람이지. 그 국내사람, 용맹 같이 배운 사람이지.
그 사람하고 저희 고려(고구려)의 저희 내분을 시켜가지고.. 간자(間者:간첩) 이간을 시켜가지고 내분을 시켜 저희끼리 싸우게 하고 들어가면 이길 수가 있더래도
살아서는 그 연개소문이 들어가서는 살아서는 가지 마십시오.” 그랬어.
이정기 : 예, 저도 그 어디서 본거 같은데요. 그 얘기를요. 예예 그렇군요.
봉우선생님 : 아 그렇게까정 해놓을때는 얼마나 무서워서 그랬겠어.
그래 당태종이 첫번에 나와가지고 그 중국서 천하 합동하던 사람 장사 상장천원(上將千員:뛰어난 장수 천명)을 데리고 왔는데,
개소문이 손에 일창(一槍)에 자삼장(刺三將)이여. 한창에 한꺼번이면 셋씩 뚫어 휙휙 집어 내던지니까, 정교금(程咬金)24)이, 진숙보(秦叔寶)25), 뭣이 뭣이 하는것들이 내빼기 주장했지..
내빼기 주장했지 댐벼서 싸운놈 한놈 없단 말이야. 당태종이 잽혀서 죽을지경인데 누구여? 설인귀(薛仁貴)가 당태종이를 구해줬거든.
그럼 설인귀가 누구냐? 개소문이 부장(部將:부하장수)이야. 부장인데 대우를 덜해.
이 설인귀가 대우를 덜하니까, 아 이왕 그런때에 당태종을 데려가면 천자니까 천자에 가서 한몫 볼테니까 그래도 우리나라 무예요,
우리나라 장사니까 개소문이하고 그래도 한참 싸웠단 말이야. 싸우는 통에 당태종은 내뺐지. 그래 거기 들어가 설중산(薛中山).. 중산정왕(中山正王)이라는 왕을.. 왕작을 봉했어. 고구려 사람의 그걸(출신을) 떠나서 왕작을 봉해가지고,
“내가.. 폐하가 저를 이렇게 공신으로 주지만은, 지가 못된게 자식들이 우람해. 우악하고 하니까 혹 죄를 지을는지 모릅니다.”하니까
단서철권(丹書鐵券)26)에다가 『살황친(殺皇親)』, 뭐 여러말 할거없이 당태종이 그 써준게 살황친.. 황.. 임금의 족친을 죽이거나,
『굴황능(掘皇陵)』 하더래도 면사(免死)하라고 패를 써줬어. 얼마나 죽을뻔한 놈을 살려놨으니 그렇게 했겠어?
송순현 : 대단한 특혜네요 그.. 허허허.
23) 이적(李勣, 594~669): 당나라의 장수로, 자는 무공(懋功)이며 본명은 서세적(徐世勣)이나, 이세적(李世勣)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성씨는 서씨(徐氏)였으나 당 고조 이연에게 이씨(李氏) 성(姓)을 하사받았다. 이름도 세적(世勣)에서 당 태종의 이름 '이세민(李世民)'의 '세'자를 피하여 뺐다. 당 태종에게 등용되어 하북과 하남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정(李靖)과 돌궐을 격파하였고, 고비사막을 넘어 설연타(薛延陀)를 평정해서 당나라를 제국으로 만드는 데 공헌을 했다.
24) 정지절(程知節, 589-665). 정지절은 제주(濟州) 동아[東阿, 현재 산동성(山東省), 아성(阿城)] 사람으로 원래 이름이 교금(咬金)이었는데 지절(知節)로 바꾸었다. 수나라말기의 난세에 먼저 이밀(李密)의 수하가 되었다가, 다시 왕세충(王世充)의 수하가 되며, 최종적으로 이세민(李世民)에게 의탁한다. 당나라 건립과정에서 여러번 전공을 세웠다. 능연각 24공신중 19번째로 올라있다.
25) 진경(秦瓊) : ?~ 638, 호국공(胡國公), 자인 숙보(叔寶)로 잘 알려져 있다. 수나라 말기의 명장인 내호아, 장수타 휘하에서 각지의 반란을 진압했다. 그 후 이연에게 귀순, 이연의 아들 이세민을 섬겨 당의 통일에 기여했다. 대군을 지휘하진 않았으나 그 무용이 뛰어나 위지공과 나란히 당초기 최고의 맹장으로 칭해진다. 이세민이 꿈속의 귀신때문에 잠을 못이루자, 위지공과 함께 무장한 채 문지기를 해 귀신을 쫓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 일화 덕에 위지공과 함께 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으로 불린다.
26) 쇳조각에 지워지지 않게 주서(朱書)하여 공신(功臣)에게 주어 대대로 죄를 면하게 하던 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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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0
봉우선생님 : 그리고 지금 지금 조선 사람의 족속들이.. 유족들이 사천성(四川省)에 제일 많아요. 당태종이 여기 함락하고 몽고로 저편짝 이 저..
이 몽고가 아니라 이 만주 이편짝에서 몰아가지고 갈적에, 조선족속 씨가 좋다고 몽고 저.. 사천성으로 얼마를 갔다 뒀는지 종목우(種牡牛종모우:씨받는 수소)처럼 가서
씨받을라고 갖다 뒀단 말이야. 그러니 거가 보면 저희 조상이 한국이라고, 고려라고 하는 사람 이 고구려.. 우리 고구려 사람이라는 사람이 가끔 나옵니다.
그거 지금 여기서 역사에 쓰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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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현 : 백두산족이 그 이 영토면에서 제일 크게 됐을때는 어느 정도까지 됐나요?
봉우선생님 : 영토?
송순현
: 네 강역이요.
봉우선생님 : 백두산족 제일 많은것이 지금 서백리아(시베리아)하고, 몽고하고, 신강(新疆:신장,위구르), 서장(新疆:티베트)까정 그리해서 좍 밀었을 때 그때가 제일 많지.
그리고 지금 이 북지나(北支那) 하고. 북지나 다가 아니지, 하남성(河南省).. 하남성, 산동성, 산서성, 직예성 그리를 삐딱하게 차지했어요.
송순현 : 그게 어느때쯤 되겠습니까?
봉우선생님 : 그게 고구려적이지.
송순현 : 고구려적이요?
봉우선생님 : 네.
이정기 : 단군시대는 그러면 더 많은..
봉우선생님 : 단군시대는 그때가 우리가 다 해가지고 그쪽 저 제후 봉하듯이 봉해주었으니까
이정기 : 영토 얘기를 할게 아니군요.
봉우선생님 : 영토 얘기 할게 아니지. 요임금, 순임금이 간자리가 어디로 갔는고 하니, 지금 만리장성 자리.. 만리장성 몽고서 여기 만주와서 배워가지고,
임금 노릇하는걸 배워가지고 들어간 자리가.. 아이고 그게, 아이고 뭣인데 잊어버렸으니까 이것도 잊어버린다. 그리 들어가서 지금 만리장성 쌓은곳인데 산서성으로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요임금도 산서성 가서 도읍을 했고, 순임금도 산서성 가(서) 도읍을 했어.
이정기 : 그러면은 지금 북경하고..
봉우선생님 : 북경은 직예성(하북성)이고, 산서성이 거기서 넘어가는거지.
이정기 : 그러니까 얼마 안가고?
봉우선생님 : 태원(太原:산서성 성도). 얼마 안되지.
이정기 : 그러면 산동하고..
봉우선생님 : 산동이 이쪽에 있고, 직예는 가운데쯤에서 산동 산서 이렇게 되지. 황.. 황해 연안이지.
이정기 : 그럼 결국은 그게 노나라 땅?
봉우선생님 : 노나라는 산동성이고.
이정기 : 완전히 산동성인가요 노나라가?
봉우선생님 : 산동성도 한쪽이지. 노나라 있던거는 은나라 있었고 제나라 있었고.
이정기 : 예, 제(齊)요?
봉우선생님 : 응, 주나라 있었고. 여러나라가 거기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