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이 요수를 건너 군영을 설치한 마수산의 위치는...
  • 작성일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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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구리의 우리 고대사 : 사마천 사기등 중국 고대문헌의 지리적인 고찰
--> https://tnrnfle.tistory.com/19

>>> 융요현의 요산이 말머리 모양인 것을 확인히려면 출처 글에서 직접 확인하시면 됩니다

■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 군영을 설치한 마수산의 위치는...

[ 645년 당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 내용에 대해 ]
신당서 동이열전에는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서 마수산 (馬首山, 말 머리 형태의 산)에 군영을 설치했다고 했는데
요수는 하북성 중부 부양하이기에 거록현에서 서쪽으로 요수를 건서서 융요현(隆堯縣)의 요산(堯山)에 군영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융요현 요산은 구글 위성지도에서 말머리 모양의 산(마수산, 馬首山)이다

☞ 『 신당서(新唐書) 동이열전(東夷列傳) 』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고
마수산(馬首山, 말 머리 형태의 산)에 군영을 설치했다
[원문] 帝度遼水, 徹杠彴, 堅士心, 營馬首山.


■ 하북성 중부 융요현(隆堯縣)의 요산(堯山)의 구글 위성 지도 캡쳐 이미지
(당태종이 군영을 설치한 말머리 모양의 산(마수산,馬首山) 화면 캡쳐 이미지)

[ 마수산 구글 위성 지도 이미지]


■ 부양하가 요수이고 하수인 근거는

1) 전국시대 『한비자(BC 280∼BC 233) 유도』편에
계(薊)를 나라로 삼은 연소왕이 하수(河水)를 연나라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계(薊) 근처에 하수(河水)가 있었다

2) 한나라 시대의 『염철론(BC 74~BC 49) 험고』에는
연나라가 요수(遼水)에 둘러 쌓였다

고 했으니 한비자 유도편의 하수가 염철론 험고의 요수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황하 하류의 물길이 바뀌어 한나라 시대 요수(遼水)로 불리운 것으로 보이고
춘추전국 시대 하수(河水)가 흘렸던 흔적이 한단시, 형태시와 형수시로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북성 남부에서 중부로 태행산맥을 따라 흐르는 지금의 부양하(滏陽河)가 요수입니다
부양하가 한나라 시대 염철론 험고에서 말하는 요수(遼水)이고 춘추전국시대 한비자 유도편의 하수로 봅니다


■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내용이♥
위만조선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위만조선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면 낙랑군 등 한사군이 북한 땅에 있었다 주장이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북한 땅이 중국 한나라 영토가 되는 중국 동북공정이 완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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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인 근거는
북한 평양에 위만조선(낙랑군)이 있었다면 위만조선(낙랑군) 서쪽에 요동군이 있고 요동군 서쪽에 요서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위만조선(낙랑군) 서쪽에 있다는 요동군과 요서군은
북한 평양 서쪽 서해바다 한가운데라고 아상한 주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사기 조선열전에는
한나라가 진나라(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을
한나라 요동군과 진고공지(상하장)로 패수를 기준으로 나누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운 진고공지(상하장)은 내버려 두었는데
연나라 사람 위만이 요동군에서 동쪽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상하장)에 위만 조선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1) 위만이 요동군에서 동쪽 패수를 건너 진고공지(상하장)에 위만 조선을 세웠다고 했으니
위만조선(낙랑군)은 요동군 동쪽에 있습니다( 위만조선,낙랑군 서쪽에 요동군이 있었습니다)

2) 진고공지(상하장)이 너무 멀어 (연나라에서) 가까운 패수를 경계로 요동군의 동쪽 경계를 삼았으니
패수가 북한 대동강이라면 연나라 수도 계(북경으로 주장)에서

대동강은 너무 멀기에 북한 대동강은 패수가 될 수 없습니다

■ 후한서와 정사 삼국지 오환선비열전을
♥고구려 역사의 일부♥로 이해해야 고구려 초기 역사를 정확히 알수 있습니다.

1) 오환선비열전에는
선비는 고조선인 동호의 일파이고 오환(말갈)은 원래 고조선인 동호라고 나옵니다

2)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1대 추모왕이 오환인 말갈을 속민으로 삼았고
고구려 2대 유리왕이 선비를 속국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